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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화 옥녀 친부 인종 중종 아버지 정체 들통난 이유

 

옥중화가 33회까지 방송 된 가운데, 여전히 옥녀 아버지 찾기는 미스터리에 빠져있지요. 그나마 현재 정확히 밝혀진 것은 옥중화 옥녀 어머니 가비가 동궁전 나인이였다는 사실인데, 그녀가 죽기전 남긴 쌍가락지와 머리 뒤꽃이 유품으로 옥녀 아버지의 정체가 어느정도 들통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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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옥중화 옥녀 친부 찾기 스토리를 옥중화 1회 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옥중화 1회에서 왕실 호위무사는 옥녀의 어머니 가비를 데리고 도망치기 시작했지요. 뒤에 따라오는 추격꾼들은 바로 윤원형이 보낸 무사들인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호위무사가 도망치는 와중에도 가비에게 예의를 차리고 높인말을 했다는 것이지요.

 

 

특히 이 호위무사는 추격꾼의 추격을 더이상 피할수 없게 되자 옥녀의 어머니인 가비를 향해 도성으로 가라고 말하며 순산하시라는 말을 전했지요.

 

그러면서 "가슴에 맺힌 한은 이 아이가 풀어줄 것입니다"라고 말했는데, 확실히 옥녀의 출생의 비밀은 왕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죠.

 

 

그런데 이때 가비가 도망을 친 후 호위무사는 홀로 자객들과 싸우는데, 창과 칼을 맞고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명의 자객이 창으로 못 움직이게 호위무사를 막고 무예가 높은 한 자객이 호위무사를 향해 칼을 날렸지만, 결과는 자객들의 몰살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나서 방송에서는 자객들 말고는 호위무사의 시신을 보여주질 않았지요. 즉 이말은 호위무사가 아직 살았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네요.

 

 

이렇게 성장한 옥녀는 나중에 자신을 키운 지천득에게 출생의 비밀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고 어머니가 남긴 쌍가락지와 머리 뒤꽃이 유품에 대해 알게 되지요.

 

 

또한 대전 상궁을 만난 옥녀는 어머니가 나인 시절 동궁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동궁전 나인들이 모두 살해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런데 이때 대전 상궁이 옥녀에게 머리뒤꽃이를 보여주며 이런 것을 본적이 있냐고 묻지요.  

 

 

옥녀는 양 아버지인 지천득이 알지도 모른다며 그 즉시 대전상궁에게 머리뒤꽃이를 빌려 달려가지요. 

 

 

지천득은 옥녀가 보여준 머리뒤꽃이를 보자마자 이게 맞다며 어디서 난 것이냐며 묻지요. 이에 옥녀는 상궁에게 빌려온 것이라 말했고 어머니의 유품과 똑같다는 것을 알고는 그 즉시 다시 궁으로 향했지요,.

 

옥녀로 부터 어머니 유품과 똑같다는 말을 들은 대전 상궁은 정말 놀라는 눈치였지요. 하지만 옥녀에게 왜 그렇게 놀라는지 그 이유를 더이상 말해주지 않았죠.

 

 

대전 상궁은 옥녀와 만난 후 전 포도청 부장이자 체탐인이었던 강선호를 만너러 갔지요. 그리고는 그 비녀의 정체에 대해 말하는데 정말 깜짝 놀랐네요.

 

대전상궁에 따르면 그 머리뒤꽃이는 중종이 승은을 입은 나인들에게 하사한 것이었으니까요. 이 말을 들은 강선호는 그럼 옥녀가 옹주가 아니냐며 크게 놀라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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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문에 옥중화 옥녀 친부 중종 설이 돈 것인데, 사실 아직까지는 옥녀가 중종의 자식인지 인종의 자식인지는 정확히 알수가 없었습니다.

 

 

한편 대전 상궁은 명종에게 대비인 어머니 문정왕후가 저지른 악행을 모두 폭로하지요. 과거 동궁전 나인들을 모조리 죽였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리고 이복형이었던 인종이 어머니에게 독살을 당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지요.

 

 

명종은 그 즉시 문정왕후를 찾아가 "이 자리가 무엇이길래 그런 참담한 짓을 저질렀습니까"라며 대성통곡을 하는데, 정말 가슴이 너무 아픈 장면이 아니었나 싶네요. 하지만 끝까지 문정왕후는 자신은 그런 일을 저지른 적이 없다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요.

 

그럼 마지막으로 옥중화 옥녀 친부 중종 설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옥녀의 아버지(아빠)는 처음에 인종 설이 가장 유력했습니다. 명종 전 임금이 인종이었고 가비가 동궁전 나인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봐도 옥녀는 인종의 딸에 가까웠지요.

 

하지만 옥중화 33회에서 대전 상궁이 머리뒤꽃이 정체가 중종이 승은을 입은 나인들에게 하사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옥녀의 아버지는 인종이 아닌 중종이 유력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 하듯이 과거 정난정이 옥녀 어머니의 유품인 머리뒤꽃이를 문정왕후에게 선물했을때 왜 그렇게 분노했는지 알수 있었지요.

 

그럼 어떻게 가비는 인종이 아닌 중종의 승은을 입을 수 있었을까?

 

알다시 중종은 부인은 12명을 두었고 그의 나이 57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종은 중종 집권 10년째에 태어났고 중종이 집권 39년 째에 죽었으니 당시 인종의 나이는 29살임을 알수 있습니다. 명종은 중종 집권 29년째에 태어났으니 당시 10살이었지요.

 

허나 인종은 집권 1년만에 죽고 명종이 왕위에 올랐지요. 이때문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한 것이고요.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 것입니다. 중종은 1544년에 죽었고 인종은 1545년에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시기상으로 옥녀가 중종의 딸일 가능성이 있을까요?

 

 

가능성은 조금 있습니다. 하지만 가비가 중종의 승은을 입었다면 분명 나인의 신분을 벗아났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전 상궁은 가비가 그런말을 한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문정왕후가 인종을 독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동궁전 나인들을 모두 죽였을때 가비는 배가 부른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즉 가비는 오랜시간 추격을 피해 달아났고 만삭에 가까웠을때 죽임을 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문정왕후가 중종에게 나인이 승은을 입었다는 이유로 죽기 살기로 죽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당시 중종의 아들은 인종, 명종 뿐만 아니라 복성군, 금원군, 봉성군, 영양군, 덕흥군, 해안군, 덕양군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왕위에 오른 인종의 아이를 나인이 임신했다면 달라집니다. 만약 나인이 인종의 아들을 낳게 되면 당연히 그 뒤의 왕위는 가비의 아들이 이어받게 되는 것이니까요. 즉 가비의 임신은 문정왕후에게 엄청난 위협이였고 이때문에 윤원형을 시켜 죽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대전상궁과 강선호가 나눈 대화는 시청자를 혼란스럽게하는 미끼라는 것이지요. 즉 옥중화 옥녀 친부는 중종이 아닌 인종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추가내용입니다: 옥녀 친부는 중종으로 밝혀졌습니다. 옥녀 어머니 가비가 그동안 도망친 이유는 당시 중전이었던 문정왕후의 인종 독살 시도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도망치기 몇일전 승은을 입었지만, 첩지가 내려지지 않아 동궁전 나인으로 계속 가비가 지냈던 것으로 내용이 정리 되었습니다. 결국 옥녀 아버지는 중종이네요. 시기적으로 정말 말이 안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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